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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미세먼지가 서울과 수도권을 비롯한 대한민국 전역에 무겁게 스며들었다. 잿빛 아우라가 친절하게도 구석구석 알차게 번져있다. 참으로 성실하고 치밀하다. 정작 인간은 반기지 않건만 굳이 붙어있겠다고 한다. 고얀 것. 사실 말이 미세먼지이지, 입자 알갱이 한 알 한 알이 머리카락 굵기보다도 한 참이나 작다. 얼마나 미세한지조차 아득할 뿐이다. 그저, 저 멀리 뿌옇게 모여든 무언가가 존재코 있다는 것만 아슬하게 알아차린다.


새삼 평소에는 잘 쳐다보지도 않던 청명한 하늘이 그립다. 그리고 그 하늘빛이 지상에 닿아 분명히 색깔을 뿜는 만물의 다채로움도 오래된 기억의 친구처럼 보고 싶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어버리니 그리워 지는 이 기회주의적 모순이 적잖이 쪽팔리다. 그래도 이 쿱쿱한 감각이 새로운 경험이 되어 일상을 더 신선하게 만들어준다면야 굳이 부정적으로만 치우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벌써 닷새째. 신기루 처럼 모습을 잠시 드러내고 사라지는 것이 일상이었거늘, 파격적으로 습관을 바꿀 기세다. 한창 서점에서 상종가인 '습관'을 바꾸라는 작가들의 메시지가 인간에게 닿지 않고, 저 하늘의 미세먼지에게 닿았나 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두 눈의 기능이 온전치 않은 것 같다. 뚜렷이 색을 가려내던 예민함은 사라지고, 누런 회색빛 필터를 장착했다. 스마트폰 인기 카메라 앱의 필터 부럽지 않다. 아주 몽환적이고, 레트로하다. 이 먼지가 인체에 전혀 무해하다고 하였다면, 이 필터 속 세상을 마음껏 즐겼으리라. 



▲ 윌리엄 터너 [증기선과 기차]



그러나 현실은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미세먼지는 우리게에 결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차라리 한 편의 뮤지컬이자 연극이었으면 좋겠다. 마치 '트루먼 쇼'처럼 대단위로 기획된 조작질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 뿌연 연기가 영화의 CG이었으면 한다. 당장 클릭 한 번으로 없앨 수 있으니 말이다. 흡사 인상파 화가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의 작품처럼 눈 앞의 빛의 환영이 흩뭉개져 있다. 이것이 거대한 설치 미술이라면 얼마나 멋진 예술 경험이겠는가. 



내일이면 마치 한 편의 기획 극이 끝나고, 새로운 극사실주의 회화 전시장으로 환히 다가왔으면 한다.


온 마음을 담아 일기예보를 찾아본다.


"개구리도 겨울잠서 깨는 '경칩'…미세먼지는 여전히 '나쁨'"

(부산일보 2019년 3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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